‘이혼 숙려기간’이 가져올 폐해 많아

  • 매체 일다
  • 등록일 2006.09.14
  • 조회수 2,657
작년 말부터 이혼관련 민법 개정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이어져왔다. 특히 2005년 11월, 비슷한 시기에 이은영 의원과 안홍준 의원이 ‘경솔한 이혼 예방’을 위해 이혼 숙려기간을 도입하자는 내용을 담은 협의이혼 절차 개선안을 제시해 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 의원이 제시한 ‘이혼 예방’ 법안은, 국가적 차원에서 가족의 해체를 막아야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정 내에서 약자의 위치를 점유한 다수 여성들에게 있어 협의 이혼이건 재판상 이혼이건 그 문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개선안이 시대착오적이며 여성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이들 의원 안들을 토대로 이번 정기국회에 이혼 관련 민법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9월 12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개최한 “새로운 이혼담론 만들기” 1차 토론회 <한국 사회의 이혼, 과연 문제인가?>에서는 이은영, 안홍준 의원의 개선안 및 법무부 안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이어졌다.

권정순 변호사는 ‘이혼절차개선과 관련한 법률안 비교’를 통해, 이혼 숙려기간을 도입한 이은영 의원안과 안홍준 의원안, 그리고 여성단체들과 함께 만든 유승희 의원안, 그리고 9월 안으로 제출예정인 법무부 안, 이 네 가지를 비교 분석했다.

이은영 의원안의 경우 ‘이혼 예방’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숙려기간 3개월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홍준 의원안 또한 이혼을 일단 ‘재고’하고 보아야 한다는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며, 법원의 직권 또는 당사자 일방의 신청에 따라 숙려기간을 6개월이나 두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법무부 안의 경우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없는 경우는 1개월의 숙려기간을 의무화한다고 되어 있다.

이혼 숙려기간을 둘 경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협의이혼을 밟는 몇 개월의 기간 동안, 경제적 능력 유무나 양육비 문제가 이혼 당사자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인섭 변호사는 이혼을 하는 과정의 몇 개월 동안,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배우자는 당장 눈앞에 놓인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적은 금액으로 이혼에 합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에 다니는 어느 여성은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1년 반이 넘는 이혼조정과 소송 기간 동안 혼자서 양육비를 부담해야 했다고 한다. 이 여성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양육비 감당이 어려워 급기야 ‘보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편에게 아이를 인도할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배우자의 경우, 협의이혼 절차를 밟는 과정 속에서는 상대방이 폭력을 휘두른 뒤에야 경찰에 신고를 하고 보호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안전장치가 미비한 실정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조처 없이, 숙려기간을 늘린다는 것은 이혼 당사자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인섭 변호사는 재판상 이혼 또한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재판상 이혼을 명시한 가사소송법의 경우, 부부의 재산을 임의 처분하는 것을 막고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사전 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이에 대해 100만원의 과태료로 강제할 뿐이다. 그래서 악의적인 배우자들은 자녀 양육비와 생활비로 150만원을 지급하는 대신 차라리 과태로 100만원을 내겠다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 사회의 가족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에 맞게 법의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철학과 교수는 이혼숙려제도가 성인의 자기 결정에 대해 국가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고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법은 개인의 이혼할 권리를 ‘사생활 영역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적극적 권리’로서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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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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